오키나와 사회대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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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1950년 창당된 오키나와의 지역 정당이다. 류큐 열도 미국 민정부 통치 시기, 다이라 다쓰오를 중심으로 창당되었으며, '조국 복귀'를 최대 목표로 일본 복귀 운동을 전개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후에도 지역 정당으로 존속하며, 일본국헌법과 미군기지 반대, 오키나와 자치주 설치 등을 주장한다. 2024년 6월 기준 오키나와현 의회에서 3석, 니시하라정 의회에서 1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러 선거에서 다른 야당들과 협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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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사회대중당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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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
로마자 표기 | Okinawa Shakai Taishū-tō |
약칭 | 사회대중당 샤다이토 |
창립일 | 1950년 10월 31일 |
본부 | 오키나와현 나하시 이즈미자키 1-17-19 클린 이즈미자키 빌딩 3층 |
웹사이트 |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
지도부 | |
위원장 | 다카라 데츠미 |
서기장 | 당야마 쇼리 |
정치 성향 | |
이념 | 사회민주주의 지역주의 다문화주의 |
정치적 위치 | 중도좌파 좌익 |
정책 | |
주요 정책 | 미일안보조약 반대 |
의회 의석 | |
중의원 | 0석 |
참의원 | 1석 |
오키나와현 의회 | 2석 |
기타 | |
당원 | 75명 (2015년 12월 31일 기준) |
기관지 | 《사회대중》 |
관련 링크 |
2. 역사
오키나와 사회대중당(沖縄社会大衆党)은 미군 점령 하의 오키나와에서 1950년 10월 31일, 다이라 다쯔오(平良辰雄)를 중심으로 결성된 정당이다.[11] 창당 초기부터 '조국 복귀', 즉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를 최대 목표로 내걸고 활동했다.
1952년에는 오키나와 인민당과 함께 '일본 복귀 추진 협회'를 조직하여 일본과의 재통합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으며, 이는 오키나와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56][2] 이후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 인민당 등과 함께 오키나와현 조국회복협의회에 참여하며 오키나와 반환 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초기에는 보수 성향 정치인도 참여했으나 점차 혁신적인 색채를 강화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할 당시, 오키나와 인민당이 일본 공산당에 합류한 것과 달리 사회대중당은 일본 사회당 등 본토 정당과의 합류 제안을 거부하고 오키나와 지역 정당으로서 독자 노선을 선택했다. 이는 당내 논의 끝에 내려진 결정이었으며, 일부 인사는 이탈하기도 했다.
복귀 이후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 내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주요 정당으로서 꾸준히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오키나와현 의회와 기초자치단체 의회 등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미군 기지 문제 등 오키나와 고유의 현안 해결을 위해 다른 혁신 세력과 연대하며 활동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참의원 의원 다카라 데쓰미(高良鉄美)가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42], 오키나와 혁신 세력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13]
2. 1. 창당 배경 (1950년)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류큐 열도 미국민정부의 통치 하에 있던 1950년 10월 31일, 당시 오키나와 군도(沖縄群島) 지사였던 다이라 다쯔오(平良辰雄)와 간자 사이치(兼次佐一) 등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11] 초대 위원장은 다이라 다쯔오였다. 창당 선언에서는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며, 국민의 것이라는 자각과 책임", "휴머니즘을 기초로 한 국민 정당", "대중의 힘을 결집한 새로운 류큐 건설"이라는 세 가지 점을 강조했다.초창기에는 비가 슈헤이(比嘉秀平, 후일 행정주석)나 니시메 준지(西銘順治, 후일 오키나와현 지사) 등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도 당원으로 참여하여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비가 슈헤이와 니시메 준지가 차례로 탈당하여 류큐 민주당(琉球民主党)을 결성(이 당은 후에 자유민주당에 합류)하면서, 사회대중당은 점차 혁신적인 색채를 강화하게 되었다.
사회대중당은 '조국 복귀', 즉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를 최대 목표로 삼았다. 1951년 상임위원회에서 일본 복귀 서명 운동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임시 당대회에서 "일본 복귀에 대한 염원"을 발표했다. 1952년 4월 29일에는 오키나와 인민당과 함께 '일본 복귀 추진 협의회'(日本復帰促進期成会)를 발족하여, 일본과의 재통합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당시 오키나와 유권자의 72% 이상에 해당하는 19만 9천 명 이상의 서명을 모으는 큰 호응을 얻었다.[56][2]
당시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실현을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요망서를 일본 정부, 미국 정부, 일본 국회 중의원 및 참의원 의장, 그리고 각 정당에 제출했다:
:1. 류큐를 가능한 한 빨리 일본에 복귀시킬 것.
:2. 교육 제도는 일본 본토와 직결시켜 동등하게 취급할 것.
:3. 일본 복귀 시까지 다음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한다:
: 1. 류큐 주민은 일본 국적을 가지며, 일본과 류큐 간의 왕래 및 거주 자유를 인정할 것.
: 2. 류큐 정부는 자치 통합 정부 일원 체제로 할 것.
: 3. 법규는 전면적으로 일본의 현행법을 준용할 것.
: 4. 미국의 류큐에 대한 경제 지원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
: 5. 일본과 류큐 간의 통상 교역에 대해서는 국내(일본 본토)와 동등한 대우를 할 것.
: 6. 해외 이주민 및 원양 어업에 대해서는 일본인으로 취급하고, 미국과 일본 양국에서 보호 지원할 것.
2. 2. 일본 복귀 운동 (1950년대 ~ 1972년)
류큐 열도 미국민정부 하의 1950년 10월 31일, 다이라 다쯔오를 중심으로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이 창당되었다. 초기에는 비가 슈헤이(후의 행정주석), 니시메 준지(후의 오키나와현 지사) 등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도 당원으로 참여하여 폭넓은 지지 기반을 가졌으나, 이들이 차례로 탈당하여 류큐 민주당(후에 자유민주당에 합류)을 결성하면서 당은 점차 혁신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게 되었다.창당 초기부터 사회대중당은 "조국 복귀", 즉 일본으로의 복귀를 최대 목표로 내걸었다. 1951년 상임위원회에서 일본 복귀 서명 운동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임시 당대회에서 "일본 복귀에 대한 염원"을 발표했다. 같은 해, 오키나와의 즉각적인 일본 복귀와 교육 제도 통합 등을 요구하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요망서를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 일본 국회 양원 의장, 각 정당에 제출했다.[11]
> 1. 류큐를 가능한 한 빨리 일본에 복귀시킬 것.
> 2. 교육 제도는 일본과 직결되어 국내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할 것.
> 3. 일본에 복귀하는 기간 동안 다음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란다.
> 1. 류큐 주민은 일본 국적을 가지며, 일류 간의 왕래와 거주 자유를 인정할 것.
> 2. 류큐 정부는 자치 통합 정부 일원 체제로 할 것.
> 3. 법규는 전면적으로 일본의 현행법을 준용할 것.
> 4. 미국의 류큐에 대한 경제 지원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
> 5. 일류 간의 통상 교역에 대해서는 국내 대우를 할 것.
> 6. 해외 이주민 및 원양 어업에 대해서는 일본인으로 취급하고, 일미 양국에서 보호 지원할 것.
> -- 사회대중당 서기장 겸차사일(兼次佐一)
1952년 4월 29일,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 인민당과 함께 '일본 복귀 추진 협회'를 발족하여 일본과의 재통합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오키나와 유권자의 72%가 넘는 199,000명 이상의 서명을 모으는 큰 호응을 얻었다.[56][2]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 인민당(후에 일본 공산당 오키나와현 위원회)과 함께 오키나와현 조국회복협의회에 가입하여 오키나와 본토 복귀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인민당과의 공동 투쟁 노선을 둘러싸고 당내에서 비판이 제기되거나 노선 대립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1968년 1월, 미국 정부가 오키나와 행정 주석의 공선제를 인정하자,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 사회당, 오키나와 인민당 등과 혁신 세력의 공동 투쟁에 합의했다. 이들 정당과 오키나와 교직원회, 현 노동조합 협의회 등은 '밝은 오키나와를 만드는 모임'(통칭 '혁신 공투 회의')을 결성하고,[12] 혁신 진영의 단일 후보로 오키나와 교직원회 회장이었던 야라 아사나에(屋良朝苗)를 추대했다. 같은 해 6월에는 7개 항으로 구성된 통일 강령을 발표했고, 11월 10일에 실시된 선거에서 야라 후보는 보수 진영 후보를 누르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1970년에 실시된 국정 참가 선거에서는 사회대중당 소속의 안자이 쓰미치요(安里積千代)가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일본 국회에 의석을 확보했다.
1972년 오키나와의 일본 본토 복귀를 앞두고, 일본 사회당으로부터 합당 제안이 있었으나 사회대중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당 위원장이었던 안자이 쓰미치요는 당을 해산하고 각자 판단에 따라 다른 정당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본인은 복귀 후 1972년 총선거에서 당선된 뒤 민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러나 사회대중당 자체는 특정 본토 정당에 합류하지 않고 오키나와의 지역 정당으로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결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복귀 운동 시기 주요 협력 파트너였던 오키나와 인민당은 1973년 일본 공산당에 합류했다.
2. 3. 일본 복귀 이후 (1972년 ~ 현재)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로 복귀할 당시, 오키나와 인민당이 일본 공산당에 합류한 것과 달리,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일본 사회당 등 일본 본토의 중앙 정당에 합류하지 않고 오키나와 지역 정당으로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당시 위원장이었던 안자이 쓰미치요는 당 해산을 주장하며 복귀 후 민사당으로 이적했으나, 당 중앙집행위원회는 본토 복귀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당의 존속을 결정했다.복귀 직후 치러진 현 의회 선거에서는 의석을 크게 늘리며 성공적인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선거에서는 부침을 겪으며 당세가 약화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현 내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주요 정당으로서 꾸준히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히라라 요시마쓰, 오야도메 야스하루 등 당 소속 인사가 나하시 시장을 역임하는 등 현정 및 시정 참여를 통해 지역 현안 해결에 목소리를 내왔다.
강령상으로는 "좌우의 전체주의를 배척하는 국민 정당"을 표방하지만, 실제 정책과 활동에서는 혁신적인 색채가 강하며, 특히 미군 기지 문제 등 오키나와 고유의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선거에서는 주로 일본 공산당, 사민당 등 다른 혁신 계열 정당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2010년대 이후에는 헤노코 미군 기지 건설 반대를 기치로 내건 올 오키나와 연대의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참의원 의원 다카라 데쓰미가 당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42], 오키나와현 의회와 나하시 의회 등에 의석을 확보하며 오키나와 혁신 세력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당원 고령화, 재정 문제 등 지역 정당으로서의 한계와 과제도 안고 있다.[31]
2. 3. 1. 1970년대 ~ 2000년대
1970년 국정 참가 선거에서 안자이 쓰미치요가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처음 진출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로 복귀하면서, 오키나와 인민당이 일본 공산당에 합류한 것처럼 사회대중당도 일본 사회당에 합류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합류 여부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오갔고, 결국 오키나와 지역 정당으로서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위원장이었던 안자이 쓰미치요는 본토 복귀와 함께 당을 해산하고 각자 진로를 선택하자고 주장했으나, 중앙집행위원회는 본토 복귀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판단하에 당의 존속을 결정했다. 안자이 쓰미치요는 복귀 후 1972년 총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뒤 민사당으로 이적했다.같은 해 치러진 현 의회 선거에서 사회대중당은 후보 전원이 당선되어 의석을 기존 7석에서 12석으로 크게 늘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오키나와 타임스는 "대중 투쟁이 침체되는 가운데 토착 정당으로서 사회대중당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976년 현 의회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4.7% 감소하며 10석을 얻는 데 그쳐 당세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1980년 현 의회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더욱 감소했고 당시 서기장까지 낙선하는 등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류큐 신보는 1면에 "사회대중당, 중대한 위기에 직면"이라고 보도하며 당의 존폐 위기를 알렸다. 사회대중당은 창당 30주년이었던 1980년에 이를 기념하여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당사』를 출판했다.
현정(県政)에서는 히라라 요시마쓰, 오야도메 야스하루 등 당 소속 인사가 나하시 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당의 강령 자체는 "좌우의 전체주의를 배척하는 국민 정당"을 표방하며 민사당과 유사한 면도 있었지만, 실제 정책과 활동은 혁신적인 색채가 강했다. 선거에서는 자민당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았던 민사당과 자주 대립하는 관계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 국정 선거에서는 주로 다른 혁신 계열 정당들과 협력하거나 독자 후보를 내며 오키나와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선거 | 연도 | 선거구 | 후보 | 정당/추천 | 결과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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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참가 선거 | 1970 | 중의원 | 안자이 쓰미치요 | 사회대중당 | 당선 | 첫 국회 진출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96 | 오키나와 2구 | 나카모토 야스이치 | 사회대중당 (공산[14]·신사회당 추천) | 낙선 | 당 고문 |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2001 | 도쿄도 선거구 | 니이가키 시게오 | 무소속 (사회대중당 서기장, 신사회당·제2원 클럽 추천) | 낙선 | 첫 현외 선거구 출마 |
제20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2004 | 오키나와현 선거구 | 이토스 케이코 | 무소속 (사회대중당, 공산·사민 추천) | 당선[15] | 당선 후 순수 무소속 활동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5 | 오키나와 1구 | 시모지 타케로 | 무소속 (사회대중당 지원) | 당선 | 전 자민당 소속 |
아카미네 마사카타 | 공산당 (사회대중당 지원) | 비례 당선 | ||||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2007 | 오키나와현 선거구 | 이토스 케이코 | 무소속 (사회대중당, 민주·공산·사민·국민신 추천) | 당선 | 재선 |
2. 3. 2. 2010년대 이후
2010년 제22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야마시로 히로하루 오키나와 평화운동센터 사무국장을 사민당과 공동 추천했으나, 민주당 및 일본 공산당과의 선거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아 낙선했다.[16][57] 같은 해 11월 28일 2010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는 전 기노완시 시장 이하 요이치를 사민당·공산당·사회대중당·국민신당·신당 일본 추천, 소조 지지로 통합 후보로 추대했으나, 당시 현직 나카이마 히로카즈에게 패배하여 낙선했다.[30]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못했다.
이 시기 사회대중당은 혁신 세력의 전반적인 쇠퇴와 더불어 당원 및 당우의 고령화, 사민당이나 민주당과의 경쟁, 지역 정당으로서 정당 교부금을 받지 못하는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당세 약화 문제에 직면했다. 2010년 8월 당 대회에서는 "사회대중당은 사라진 것과 같다"는 비판과 함께 당 활동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31] 생존을 위한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2012년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3명을 공천하고 8명을 추천하여, 현직 2명에 더해 전 위원장이 복귀하면서 1석 증가한 3석을 확보했다.[32] 같은 해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주당·국민신당 후보를 지원하지 않고, 1구 아카미네 세이켄(일본공산당), 2구 데루야 간토쿠(사민당), 3구 다마키 데니(일본 미래의 당), 4구 즈케란 조세이(무소속)를 각각 추천했다. 데루야는 소선거구에서 당선되었고, 아카미네와 다마키는 비례대표로 당선되었으며, 즈케란은 낙선했다.
2013년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오키나와현 선거구에서 현직 이토스 케이코를 당 공인 후보(생활·공산·사민·녹색의 바람·신사 추천)로 내세워 3선에 성공시켰다.[17][18][19][20]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일본공산당을 추천했다.[21]
2014년에는 오나가 다케시 당시 나하시 시장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후보로 올 오키나와 세력(공산당·사민당·생활의 당·현의회 회파 "현민 네트워크" 등)과 함께 지원하여 당선시키는 데 기여했다. 오나가는 자민당·차세대당 추천의 현직 나카이마 히로카즈를 큰 표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34] 오나가 지사 출마로 공석이 된 나하시장 선거에서도 당시 부시장이었던 시로마 미키코를 동일한 연대 틀로 지원하여 당선시켰다.[35] 같은 해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올 오키나와 후보로 1구 아카미네(공산), 2구 데루야(사민), 3구 다마키(생활), 4구 나카사토 도시노부(무소속)를 추천하여 모두 소선거구에서 당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9월 통합 지방 선거에서는 나고시와 이시가키시에서 당 공천 후보가 당선되었다.[33]
2016년 1월 기노완시장 선거에서는 주일미군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 반대를 내건 통합 후보 시무라 케이이치로를 오나가 지사 및 야권 정당들과 함께 지원했으나, 자민당·공명당 추천의 현직 사키마 아쓰시에게 패배했다.[36] 같은 해 제24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올 오키나와 후보로 전 기노완 시장 이하 요이치를 추대하여, 자민당 현직 시마지리 아이코 등을 누르고 당선시켰다.[23] 선거 후 이토스 케이코와 이하 요이치는 참의원 원내 회파 「오키나와의 바람」을 결성했다. 6월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공천 후보 3명이 모두 당선되었고,[37] 현정 여당 최대 회파인 "사민·사회대중당·결연합"을 구성했다.[38]
2017년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올 오키나와 체제를 유지하며 1구 아카미네, 2구 데루야, 3구 다마키, 4구 나카사토를 추천했다. 아카미네, 데루야, 다마키는 재선되었으나 나카사토는 낙선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19년 제25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를 앞두고 당은 이토스 케이코에게 용퇴를 권고하고 류큐 대학 법과대학원 교수 다카라 데쓰미를 추대했다.[24] 이 과정에서 이토스가 반발하여 탈당계를 제출하고[25] 일부 시민 단체에서 후보 선정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등[26] 내부 갈등이 있었으나, 5월 올 오키나와가 다카라 지지를 표명하고 이토스도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봉합되었다. 선거 결과 다카라는 자민당 후보 안리 요시노부를 누르고 당선되어 당의 의석을 지켰다.[27]
2020년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오시로 가즈마사 위원장이 낙선하면서 의석수가 2석으로 줄었고, 오시로는 위원장 사퇴와 정계 은퇴를 표명했다.[39] 선거 후 사민당 등과 회파 "오키나와·평화"를 결성했으며,[40][41] 9월 임시 당대회에서 참의원 의원 다카라 데쓰미를 제13대 위원장으로 선출했다.[42]
2021년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올 오키나와 체제를 통해 일본공산당, 입헌민주당, 사민당, 보수·중도 정책 집단 「니누파부시」 등과 협력했다.[28]
2022년 제26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오키나와현 선거구의 무소속 현직 이하 요이치를 지원하여 재선에 기여했다.[29] 같은 해 8월, 오나가 다케하루 현의원(오나가 다케시 전 지사의 아들)의 나하시장 선거 출마로 치러진 현의원 보궐선거(나하시·남부 도서 지역)에서는 당 부서기장인 우에하라 카이 나하시의원을 후보로 내세웠다.[43] 오나가 다케하루는 우에하라를 후계자로 지명했으나, 다마키 데니 지사는 이토스 케이코 전 위원장의 딸 이토스 미키를 지지하면서 지원이 분산되었다.[44] 9월 11일 선거에서 우에하라는 이토스 미키와 자민당 신인 등을 누르고 당선되었다.[45]
2023년 11월, 히가 교코 현의원이 차기 중의원 선거 오키나와현 제4구 출마 의사를 당과 사전 협의 없이 밝히자, 당은 히가의 탈당서를 수리하고 부위원장직에서 해임했다.[46]
2024년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공천 후보 3명이 전원 당선되었다.[47] 그러나 2022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던 우에하라 카이 현의원이 무소속으로 재선된 후, 당 방침에 반하는 행동을 반복했다는 이유로 6월 29일 중앙 집행 위원회에서 제명 처분되었다.[48]
3. 정책 및 이념
사회대중당은 창당 선언에서 "휴머니즘을 기초로 한 국민 정당"을 표방했으며, 강령 자체는 "좌우의 전체주의를 배척하는 국민 정당"으로 민사당과 유사한 면이 있었으나, 실제 정책과 활동은 혁신적인 성격이 강하다.
초기에는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를 최대 목표로 삼고 활동했으며, 이를 위해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 등에 복귀를 요구하는 요망서를 제출했다.[11][12] 주요 요구 사항은 조속한 일본 복귀, 일본 본토와 동일한 교육 제도 적용, 복귀 시까지의 일본 국적 인정 및 왕래/거주 자유 보장, 자치 정부 수립, 일본법 준용, 미국 경제 지원 지속, 통상 교역에서의 국내 대우, 해외 이주민 및 원양 어업에서의 일본인 대우 등이었다.[11] 이후 오키나와 인민당 등과 함께 오키나와현 조국회복협의회에 참여하여 복귀 운동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주요 정책 및 이념은 다음과 같다.
- '''평화 및 군비 축소''': 일본국 헌법 전문의 이념과 9조를 존중하며, 미일안전보장조약의 파기를 주장한다.
- '''미군 기지 문제''': 오키나와 주둔 미군 기지의 반환과 정리·축소를 요구하며, 궁극적으로는 미군 기지 철수를 목표로 한다. 또한 미일지위협정의 전면 개정을 요구한다.
- '''지방 자치''': 도도부현제를 기반으로 한 오키나와현의 특별자치주 설치를 주장한다.
- '''생물 다양성 보전''': 오키나와의 자연 보호를 위해 세계 자연 기금(WWF) 및 국제 자연 보전 연맹(IUCN)과 협력하여 세계자연유산 등록을 추진한다. 산호 보호 및 재생, 듀공 서식지 확보를 목표로 한다.
- '''교통''': 철도 및 LRT(신형 노면전차) 등 새로운 대중교통 시스템 구축을 추진한다.
- '''도서 지역 진흥''': 자연환경 보호를 고려하며 도서 지역의 인프라 정비 및 교통 운임 감면을 주장한다.
- '''센카쿠 열도 문제''': 과거 국회의원이었던 안자이 쓰미치요는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중국 측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센카쿠 열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정부의 확고한 대응을 요구한 바 있다.[50]
현재 오키나와현 내에서는 사회민주당, 일본 공산당, 입헌민주당 등 다른 야당 및 현지 정치 세력과 협력하여 미군 기지 문제 등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올 오키나와 체제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49] 이러한 협력 관계는 사회대중당의 정책 실현에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4. 조직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역 정당이다. 현재 일본 국회 참의원과 오키나와현 의회, 나하시 의회 등 일부 기초자치단체 의회에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강령상으로는 "좌우의 전체주의를 배척하는 국민 정당"을 표방하며, 이는 민사당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실제 정책이나 활동은 혁신적인 성향이 강하며, 선거에서는 자민당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았던 민사당과 대립하는 경우가 잦았다. 오키나와현 내에서는 일본 공산당, 사회민주당 등 다른 혁신 세력과 연대하는 경우가 많으며, 오키나와 혁신 세력을 결집하는 주요 정당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4. 1. 역대 위원장
대 | 이름 | 취임일 | 비고 | |
---|---|---|---|---|
1 | 평량신웅(平良辰雄) | 1950년 10월 31일 | 오키나와 제도 지사, 류큐 입법원 의원 | |
2 | 안리적천(安里積千代) | -- | 1955년 11월 26일 | 류큐 입법원 의원 |
3 | 평량행시(平良幸市) | -- | 1958년 5월 3일 | 류큐 입법원 의원 |
4 | 안리적천(安里積千代) | -- | 중의원 의원, 민사당으로 이적하여 사임 | |
5 | 평량행시(平良幸市) | -- | 1973년 1월 |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오키나와현 지사 취임에 따라 사임 |
6 | 고하라히사오(嵩原久男) | 1976년 8월 |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 |
7 | 나카모토야스이치(仲本安一) | 1984년 |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 |
8 | 즈이케이란쵸호(瑞慶覧長方) | 1987년 |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 |
9 | 시마부쿠로무네야스(島袋宗康) | 1989년 |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참의원 의원 | |
10 | 키나마사하루(喜納昌春) | 2004년 |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 |
11 | 이토수케이코(糸数慶子) | 2010년 8월 6일 | 참의원 의원 | |
12 | 오오시로카즈마(大城一馬) | 2016년 8월 |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낙선에 따라 사임 | |
13 | 타카라테츠미(高良鉄美) | 2020년 9월 26일 | 참의원 의원 |
4. 2. 현직 국회의원
2019년 7월 29일 기준으로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소속 국회의원은 참의원 1명이다.
4. 3. 오키나와현 내 당세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역 정당으로, 현 의회와 일부 기초자치단체 의회에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혁신 세력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특히 주일미군 기지 문제 등 오키나와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현재 일본 국회에는 참의원 의원인 다카라 데쓰미가 소속되어 있으며, 그는 2020년 9월부터 당 위원장을 맡고 있다.[42] 다카라 데쓰미는 참의원에서 오키나와 회오리 소속으로 활동한다.
오키나와현 의회에서는 꾸준히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2024년 6월 현의회 선거 결과, 공천한 후보 3명 전원이 당선되어 현재 3석을 보유하고 있다.[47]
의회 | 의석 수 | 정수 | 의원 | 선거구 | 지난 선거 |
---|---|---|---|---|---|
오키나와현 의회 | 3 | 48 | 2024년 6월 16일 | ||
니시하라정 의회 | 1 | 19 | 니시하라정 | 2022년 9월 11일 |
- '''참고:''' 니시하라정 의회 기나 쇼세이 의원은 선거 당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2022년 현의회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던 우에하라 카이사 의원은 2024년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재선했으나, 선거 후 당 방침 위반을 이유로 제명되었다.[48] 2023년 11월에는 히가 쿄코 당시 현의회 의원 겸 부위원장이 차기 중의원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히며 탈당했다.[46]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현 내 선거에서 다른 혁신 정당(주로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 등)과 연대하여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일미군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 문제에 반대하는 올 오키나와 세력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해왔다.
- '''2006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당시 참의원 의원이던 이토스 게이코가 야당 통합 후보로 출마했으나, 자유민주당·공명당 추천의 나카이마 히로카즈에게 패배하여 혁신 세력의 현정 탈환에 실패했다.
- '''2008년 오키나와현 의회 선거''': 혁신 세력이 16년 만에 다수파를 탈환했지만, 사회대중당은 의석이 4석에서 2석으로 줄어드는 부진을 겪었다. 같은 해 나하시 시장 선거에서도 야당 통합 후보가 낙선했다.
- '''2010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전 기노완시 시장 이하 요이치를 통합 후보로 추대했으나 낙선했다.[30] 이 시기 당원 고령화, 재정난, 지역 정당으로서의 한계 등으로 당세 쇠퇴가 지적되기도 했다.[31]
- '''2012년 오키나와현 의회 선거''': 3석을 확보하며 의석을 일부 회복했다.[32]
- '''2014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를 내건 오나가 다케시를 다른 혁신 정당들과 함께 지원하여 당선시키는 데 기여했다.[34] 이는 '올 오키나와' 연대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는다. 같은 날 치러진 나하시 시장 선거에서도 시로마 미키코를 지원하여 당선시켰다.[35]
- '''2016년 기노완 시장 선거''': 후텐마 기지가 위치한 기노완시에서 헤노코 이전 반대 후보(시무라 게이이치로)를 지원했으나, 자유민주당·공명당 추천 현직 시장에게 패배했다.[36]
- '''2016년 오키나와현 의회 선거''': 3석을 유지하고, 현정 여당 회파 '사민·사회대중당·결연합'을 결성했다.[37][38]
- '''2020년 오키나와현 의회 선거''': 2석으로 의석이 줄었으며, 당시 위원장이던 오시로 가즈마가 낙선 후 정계 은퇴 및 위원장직 사퇴를 표명했다.[39] 이후 다카라 데쓰미 참의원 의원이 새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42]
- '''2022년 현의회 보궐선거''': 나하시·남부 도서 지역 선거구에서 당 부서기장이던 우에하라 가이사가 당선되었다.[45] 이는 오나가 다케시 전 지사의 아들인 오나가 타케하루 현의원의 나하시장 선거 출마에 따른 것이었다.
- '''2024년 오키나와현 의회 선거''': 공천 후보 3명이 모두 당선되어 3석을 확보하며 의석을 회복했다.[47]

5. 다른 정당과의 관계
오키나와 사회대중당(社大党)은 창당 초기 평량신웅(平良辰雄) 지사를 중심으로 비가 슈헤이(후의 행정주석), 니시메 준지(후의 오키나와현 지사) 등 보수 성향 정치인까지 참여하여 폭넓은 지지 기반을 가졌다. 그러나 비가, 니시메 등이 탈당하여 류큐 민주당(후에 자유민주당에 합류)을 결성하면서 점차 혁신적인 색채를 강화했다.
이후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 인민당(후의 일본 공산당 오키나와현 위원회)과 함께 오키나와현 조국회복협의회에 참여하며 오키나와 반환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인민당과의 공동 투쟁 노선을 두고 당내에서 비판과 이견이 존재하기도 했다.
1972년 본토 복귀를 앞두고 일본 사회당으로의 합류가 제안되었으나, 사회대중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키나와 지역 정당으로서 독자 노선을 선택했다. 당시 위원장이었던 안자이 쓰미치요는 당 해산 후 개별적인 선택을 주장하며 복귀 후 민사당으로 이적했다. 강령상으로는 민사당과 유사하게 "좌우의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국민 정당"을 표방했으나, 실제 정책과 활동에서는 혁신 성향이 뚜렷해지면서, 선거에서 자민당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았던 민사당과는 자주 대립하는 관계가 되었다.
현대에 들어 사회대중당은 민주당, 사회민주당, 공산당, 신사회당 등 다른 야당들과 다양한 선거에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오키나와에서는 사회대중당의 존재가 제한적이나마 사공공투(社共共闘, 사회당-공산당 공동 투쟁)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1998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이후 공명당이 혁신 진영에서 이탈하여 자민당과 연대하고, 2006년에는 자유연합마저 자민당 지지로 돌아서면서 혁신 세력의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다. 또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민주당 정권이 현내 이전을 추진하면서 사회대중당을 포함한 오키나와 현 내 정당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나하시 의회에서는 사회민주당과 공동 회파인 "사사 연합"(社社連合)을 구성하고 있으나, 소수파에 머물러 있다. 미군 기지 반대 투쟁을 계기로 2014년 총선거 무렵부터 본격화된 야권 연대인 올 오키나와 체제 구축에 주요 정당으로서 참여하며 오키나와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49]
5. 1. 선거 협력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현 내에서 민주당, 사회민주당, 공산당, 신사회당 등 다른 정당들과 다양한 선거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 이러한 협력은 오키나와 특유의 정치 지형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특히 사공공투(社共共闘, 사회당-공산당 공동 투쟁)의 명맥을 잇고 반미군 기지 운동을 중심으로 한 올 오키나와 체제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1998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를 기점으로 공명당이 혁신 진영에서 이탈하여 자민당과 협력하고, 2006년에는 자유연합마저 자민당 지지로 돌아서면서 선거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또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현외 이전을 추진하면서 사회대중당을 포함한 오키나와 현 내 정당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국정 선거 ===
본토 복귀 이후 국정 선거에서 사회대중당은 초기에 사회당, 공명당, 공산당 등과 함께 혁신 통일 후보를 지지하거나 공동으로 추천하는 방식으로 참여했다.
- 1992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당시 당 위원장이었던 시마부쿠로 무네야스가 당 공인(혁신 통일 후보, 사회당 등 추천)으로 출마하여 자민당 현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로써 사회대중당은 안자이 쓰미치요 이후 오랜만에 국회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시마부쿠로는 제2원 클럽 회파에 소속되었다.
- 1996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오키나와현 제2구에 나카모토 야스이치(당시 당 고문)가 일본 공산당[14]과 신사회당의 추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신진당의 나카무라 세이분에게 밀려 낙선했다.
- 2001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니이가키 시게오(당시 서기장)가 도쿄도 선거구에서 신사회당과 제2원 클럽의 추천을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처음으로 현외 선거에 도전했으나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 2004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시마부쿠로의 후임으로 이토카즈 케이코가 일본 공산당과 사민당의 추천을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15]
-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오키나와현 제1구에서 특정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무소속 시모지 미키오와 일본 공산당의 아카미네 세이켄 두 후보를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시모지는 소선거구에서, 아카미네는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공산당, 사민당, 국민신당, 사회대중당이 연합하여 이토카즈 케이코를 무소속 단일 후보로 추대했고, 이토카즈는 재선에 성공했다.
- 2010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야마시로 히로지 오키나와 평화운동센터 사무국장을 사민당과 공동으로 추천했으나,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고 공산당은 독자 후보를 내는 등 야권 협력이 원활하지 않아 낙선했다.[16]
-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및 국민신당 후보를 지원하지 않고, 1구 아카미네 세이켄(공산), 2구 데루야 간토쿠(사민), 3구 다마키 데니(미래), 4구 미즈케란 조토쿠(무소속)를 각각 추천했다. 데루야는 소선거구에서 당선되었고, 아카미네와 다마키는 비례대표로 부활했으나, 미즈케란은 낙선했다.
-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현직 이토카즈 케이코를 당 공인 후보로 내세웠으며, 생활의 당, 공산당, 사민당, 녹색 바람, 신사회당의 추천을 받았다.[17][18][19][20] 이토카즈는 자민당 신인 후보를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일본 공산당을 추천했다.[21]
-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반대하는 올 오키나와 체제가 본격 가동되었다. 사회대중당은 민공공투(民共共闘, 민주-공산 공동 투쟁) 및 오나가 다케시 지사의 현정 여당 세력과 연대하여 1구 아카미네 세이켄(공산), 2구 데루야 간토쿠(사민), 3구 다마키 데니(생활), 4구 나카사토 도시노부(무소속)를 추천했고, 4명 모두 소선거구에서 당선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올 오키나와는 전 기노완시 시장 이하 요이치를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이하 후보는 현직 각료였던 시마지리 아이코 (자민당 공인, 공명당, 유신, 소조 추천[22]) 등을 누르고 당선되었다.[23] 선거 후 이토카즈와 이하는 참의원 원내 회파 오키나와의 바람을 결성했다.
-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도 올 오키나와 체제를 유지하며 1구 아카미네, 2구 데루야, 3구 다마키, 4구 나카사토를 추천했다. 아카미네, 데루야, 다마키는 소선거구에서 재선되었으나, 나카사토는 자민당 후보에게 패배하여 낙선했다.
-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이토카즈 케이코 대신 류큐대학 법과대학원 교수 다카라 데쓰미를 올 오키나와 후보로 추대했다.[24] 초기에는 후보 교체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있었으나[25][26], 결국 올 오키나와 세력이 다카라 지지를 표명하고 이토카즈도 지원에 나서면서 단일대오를 형성했다. 다카라는 자민당 공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사회대중당의 의석을 지켰다.[27]
- 2021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당 차원의 독자 후보는 내지 않았으나, 올 오키나와 체제를 유지하며 일본 공산당, 입헌민주당, 사민당 등과 협력하여 선거를 치렀다.[28]
- 2022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독자 후보 없이 오키나와현 선거구에 출마한 올 오키나와 소속 무소속 현직 이하 요이치를 지원했고[29], 이하는 접전 끝에 자민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 지방 선거 ===
지방 선거에서도 사회대중당은 다른 혁신 정당들과 협력하여 단일 후보를 추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나 나하시 시장 선거 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 2006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는 당시 참의원이었던 이토카즈 케이코가 의원직을 사퇴하고 야권 단일 후보(사회대중당, 민주당, 사민당, 공산당, 국민신당, 신당일본 추천, 소조 지지)로 출마했으나, 자민당과 공명당이 추천한 나카이마 히로카즈에게 패배했다.
- 2008년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혁신 진영이 16년 만에 다수파를 탈환했지만, 사회대중당은 민주당과 공산당의 약진 속에서 당시 당 위원장이 낙선하는 등 부진하여 의석수가 4석에서 2석으로 줄었다.
- 2010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는 전 기노완시 시장 이하 요이치를 야권 단일 후보(사민당, 공산당, 사회대중당, 국민신당, 신당일본 추천, 소조 지지)로 추대했으나, 현직 나카이마 히로카즈에게 다시 패배했다.[30]
- 2014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는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반대하는 올 오키나와 세력이 결집하여 당시 나하시 시장이었던 오나가 다케시를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사회대중당은 공산당, 사민당, 생활의 당 등과 함께 오나가 후보를 지원했고, 오나가는 현직 나카이마 히로카즈를 큰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34] 같은 날 치러진 나하시 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올 오키나와는 부시장이었던 시로마 미키코를 단일 후보로 지원하여 당선시켰다.[35]
- 2016년 기노완시장 선거에서는 헨나코 기지 건설 반대를 내건 단일 후보를 지원했으나, 자민당과 공명당이 추천한 현직 시장에게 패배했다.[36]
- 2022년 나하시장 선거 출마를 위한 현의원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는 사회대중당 부서기장 출신 우에하라 아키라가 올 오키나와 일부 세력 및 다마키 데니 지사의 지지를 받은 다른 후보 등을 누르고 당선되었다.[45] (우에하라는 이후 당 방침 위반으로 2024년 제명됨[48])
=== 올 오키나와 ===
후텐마 미군 기지의 헨나코 이전에 반대하는 여론을 바탕으로 2014년 총선거 즈음부터 본격화된 오키나와현 내의 초당적 정치 연대체이다. 사회대중당을 비롯해 사회민주당, 일본 공산당, 입헌민주당 오키나와현 연합, 지역 정당 및 정치 단체, 시민 사회 세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와 국정 선거 등에서 단일 후보를 내세워 자민당- 공명당 연합 후보와 경쟁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49] 2020년 6월 기준으로 오키나와현 의회에서 과반수를 확보하는 등 현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5. 2. 올 오키나와
미군 기지 반대 투쟁을 계기로 2014년 총선거부터 오키나와현 내 야당들의 선거 협력 체제가 구축되었는데, 이를 올 오키나와(オール沖縄)라고 부른다.[49]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이 연합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이다.올 오키나와에는 사회대중당 외에도 사회민주당, 일본 공산당, 입헌민주당 오키나와현 연락회, 나하시 의회 회파 '신풍회', 오키나와현 의회 회파 '오키나와'(구칭 현민넷) 등 다양한 정당과 정치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49] 오나가 유우지 전 오키나와현 지사를 시작으로 현 지사, 나하시장, 나고시장 등 주요 자치단체장들도 올 오키나와에 참여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49] 이러한 연대를 통해 2020년 6월 기준으로 오키나와현 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등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49]
올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2014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를 들 수 있다. 당시 나하시장이었던 오나가 유우지를 사회대중당을 비롯한 여러 정당 및 단체가 공동으로 지지하여, 자민당과 차세대의 당이 추천한 현직 지사 나카이마 히로타 등을 누르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다.[34] 이는 헤노코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오키나와 현민들의 의사를 결집시킨 결과로 평가받는다.
사회대중당은 오키나와 평화운동센터를 중심으로 올 오키나와에 참여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와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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参院選沖縄:県経済団体会議・維新・そうぞう、島尻安伊子氏を推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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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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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辺野古反対の伊波氏が当選確実 参院沖縄区
https://www.okinawat[...]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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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糸数慶子氏、参院選出馬を断念 社大党が勇退求める
https://www.asahi.co[...]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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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糸数慶子氏、社大党に離党届 参院選での高良鉄美氏擁立に反発
https://www.okinawat[...]
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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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オール沖縄に参院選候補の再考要求 玉城知事後援会長ら
https://www.sankei.c[...]
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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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高良鉄美氏が当選確実 参院選沖縄 辺野古新基地に「反対」訴え
https://www.okinawat[...]
201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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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021総選挙 沖縄1区 あかみね氏必勝 共同代表会議 決意固め合う
https://www.jcp.or.j[...]
202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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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参院選公示 沖縄選挙区に5人立候補 18日間の選挙戦始まる
https://web.archive.[...]
20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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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仲井真氏 知事再選 伊波氏に3万8626票差
http://www.okinawati[...]
201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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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地域性生かす政策を」 社大党結党60年、党勢回復へ
http://ryukyushimpo.[...]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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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県議選 野党・中道が過半数、仲井真県政に打撃
http://ryukyushimpo.[...]
201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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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統一地方選 速報
http://ryukyushimpo.[...]
201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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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沖縄知事選 翁長氏が圧勝 新基地は造らせない 安倍政権に痛烈な審判
https://www.jcp.or.j[...]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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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那覇市長は城間氏 初の女性、最多得票10万超
http://ryukyushimpo.[...]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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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宜野湾市長選大敗「民意失った」 辺野古反対へ知事痛手
http://www.asahi.com[...]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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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県政与党大勝、過半数27議席 沖縄県議選 辺野古反対派は31人
https://ryukyushimpo[...]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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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与党「社民・社大・結」が12人 沖縄県議会の会派固まる
https://www.okinawat[...]
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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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社大党の大城一馬委員長、辞任へ 沖縄県議選で落選、引退に伴い
https://www.okinawat[...]
202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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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県議会与党、最大会派は社民・社大の「沖縄平和ネット」 新会派「てぃーだ」に5新人
https://ryukyushimpo[...]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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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市民団体と同じ名前で指摘 「平和ネット」会派名変更へ
https://www.okinawat[...]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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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社大党委員長に高良鉄美参院議員 「結党の理念を実現」
https://ryukyushimpo[...]
202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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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県議補選、9月11日投開票 沖縄知事選と同日 上原、糸数、平良の3氏が出馬表明
https://ryukyushimpo[...]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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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未希さんでいきたい」 デニー知事の勇み足、身内の分裂に 自民は1区支部長に責任論
https://www.okinawat[...]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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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県議補選 上原快佐氏が初当選 オール沖縄の議席多数に
https://web.archive.[...]
202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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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比嘉京子県議の離党 社大党が承認 副委員長職の解任も 沖縄4区から立候補に意欲
https://www.okinawat[...]
20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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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沖縄県議選で知事派大敗 玉城氏苦境も「辺野古反対は揺るぎない」
https://www.asahi.co[...]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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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県議の上原氏 社大党が除籍 書面で通知
https://www.okinawat[...]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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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沖縄県議会各派名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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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
第68回国会 衆議院 沖縄及び北方問題に関する特別委員会第3号
https://kokkai.ndl.g[...]
1972-03-08
[51]
뉴스
県内各政党 支援へ動き本格化 県に対策要請、募金活動も
http://ryukyushimpo.[...]
201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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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3月14日(月)東北関東大震災支援に街頭において募金をよびかけましたところ、多くの方々より御協力をたまわりました。
http://www.okinawash[...]
201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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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011年4月9日(土)党として、大震災支援の募金活動を行いました。多くの皆様からのご協力をいただきました。
http://www.okinawash[...]
201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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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復興は総力戦で―大震災の被災地を訪ねて
https://itokazu.exbl[...]
2011-04-14
[55]
서적
Protests Against U.S. Military Base Policy in Asia: Persuasion and Its Limits
[56]
서적
The Origins of the Bilateral Okinawa Problem
갈랜드 출판사, Inc.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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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http://www.okinawatimes.co.jp/article/2010-07-12_7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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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타임즈
201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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